HOME>>신행생활>>보경스님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서문

 

글쓴이

: dharmak   

작성일

: 2017-10-13 오후 8:53:00

첨부파일

:

 

서문(『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어린왕자』

지난봄, 보성 대원사 티베트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어린왕자 특별전」을 보고 왔다. 대원사는 광주와 송광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절이고, 봄이 되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힐 만큼 십리 벚꽃길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연 초부터 여기저기 전시현수막이 걸려있어서 광주를 나다니는 길에 눈에 띠어 호기심이 일긴 했지만 정작 들어가 보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올 4월의 한 행사장에서 전시를 개최하고 계시는 현장 사숙님을 뵈었더니 한번 구경 오라는 말씀을 하셔서 날을 잡아 건너가 보았다. 그렇잖아도 인적 드문 전라도 깊은 시골 절인데 그날은 봄비까지 하루 종일 내려서인지 도량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전시는 생택쥐페리재단의 협력으로 한불수교13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것이었다. 전시장은 넓지 않았지만 네 공간으로 구성되어 작가의 일면을 보여주었고, ‘어린왕자 미공개 삽화전’에선 생텍쥐페리가 최초로 습작했던 어린왕자와 인물들의 드로잉 등이 걸려있었다. 그 중에 유독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언덕 위에 누워있는 어린왕자’ 삽화였다. 탑전에서 나와 살고 있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혼자 지내는 안쓰러움이 항상 마음에 걸리는데, 우주의 어느 별에 홀로 존재하지만 외로움을 상관하지 않는 어린왕자가 고양이와 겹쳐졌다. 나는 사숙님을 찾아뵙지도 않고 고양이가 기다리는 탑전으로 급히 돌아섰다.

최근엔 편집자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막바지 원고손질을 해야 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 부득이 일을 미뤄놓고 한 이틀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통상 원고가 마무리되고 큰 틀에서 편집방향이 잡히면 세세한 교정 작업과 함께 북디자이너의 솜씨가 발휘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내가 편집자로부터 메일을 받은 때가 거의 그 무렵이었다. 책과 관련하여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유독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책의 삽화는 하루키의 여러 책에 삽화를 그린 안자이 미즈마루 풍을 생각하고 있습니다”하는 말이었다. 이 사람의 이름까지 기억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대충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인터넷에 저자를 검색해보니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라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책이 나와 있어서 서울에 가면 바로 받아볼 수 있도록 법련사에 구입을 부탁해 놓았다. 과연 이번 책에 실리게 될 삽화가 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가늠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푹신푹신한 고양이’나 ‘다양한 무라까미 씨’ 같은 익숙한 그림들이 있었다. 특히 책과 고양이를 좋아하는 하루키를 표현한 「소년 카프카」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림은 프로레슬링 선수가 해드락을 하듯이 하루키가 왼팔에 고양이 목을 감은 채로 책을 보는 모습이었다. 안자이 미즈마루는 “사람은 이상한 것을 보면 마가 끼어서 이상해진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 고양이를 만나 책까지 내게 되었으니 마가 껴도 큰 마가 낀 것이다. ‘별난 짓을 한다’ 할까봐서 어디 말도 못하고 몰래 저지른 일이니 고양이와 나 사이에는 할 얘기가 많다.

내가 어쩌다 떠돌이 산중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을까? 이 기구한 인연이 영글어가면서 나는 색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고양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정도가 되겠는데, 사람들 속에서는 알기 어려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고양이는 ‘바라보기’와 ‘기다리기’라는 두 가지의 교훈을 안겼다. 고양이는 정말이지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1cm라도 높은 자리를 선호한다. 그리고 바라본다. 오직 움직이는 것은 꼬리뿐이다. 이 꼬리의 동작이 부동의 지루함을 상쇄하는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바라보기는 불교적 수행이나 일상의 성찰에서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음의 모든 것은 진지하게 바라보면 가라앉으면서 소멸된다. 번뇌의 불이 꺼지는 것이다. 얼굴을 보여주는 거울은 있지만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자기성찰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양이의 바라보기를 통해 나는 참선을 색다르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은 기다림의 교훈이다. 에픽테토스는 “인생의 중요한 법칙은 참을 줄 아는 것이고 지혜의 절반은 인내에 있다”라고 했다. 기다림과 인내는 함께 이해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주만물의 모든 것은 시간의 산물이고 시간속에서 생멸을 거듭한다. 이 시간의 운명을 거스르면 죽음과 파멸에 떨어지고 순리에 따르고 기다리면 없던 일도 만들어진다. 삶의 긍정과 생성이라는 왕궁의 주춧돌은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신은 회초리가 아니라 시간으로 인간을 단련한다”고 하면서 “진리는 시간의 팔에 기대어 절뚝거리며 언제나 맨 마지막에 온다”라고 삶의 은근한 끈기를 권했다.

산중 절의 고양이 이야기라 생경하기도 하고 여간 멋쩍은 게 아니다. 나만의 이야기로 마음에 담고 말까 적잖이 망설여지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작아질까 두려워 자라는 것을 포기하거나 울게 될 것이 두려워 웃는 것을 포기하지는 말자고 용기를 냈다. 우리는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심리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외로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세계 어느 곳이나 동물을 동반자로 생각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인간 삶의 좋은 일들을 보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이야기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개인이 체험한 기쁨의 지혜를 몹시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가 낀’ 이상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게 되는 강한 자극이 되었다. 이 고양이는 ‘오후 4시’가 아니어도 하루 어느 때건 항상 설레게 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불광출판사가 고맙고, 냥이가 고맙고, 동물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고맙다.

조계산 송광사 탑전에서 보경 합장

*책은 11월 10일 전후로 하여 불광출판사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총 게시물 : 1062 (Total 1062 Articles)                                                  [ 1 / 71Page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HIT

 FILE

1062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서문

dharmak

17-10-13

414

-

1061

아함경 강설집 출간 "서문"

dharmak

16-08-03

846

-

1060

신간 "선문염송 강설" 서문

dharmak

16-01-18

950

-

1059

을미년 11월 초하루(12~병신년1월) 선문염...

dharmak

15-12-14

421

-

1058

을미년10월 초하루(11~12) 선문염송 강설...

dharmak

15-12-14

198

-

1057

을미년 9월 초하루(10~11) 선문염송 강설

dharmak

15-10-13

273

-

1056

을미년 8월 초하루(9~10월) 선문염송 강설

dharmak

15-10-13

198

-

1055

을미년 7월 초하루(8~9월) 선문염송 강설

dharmak

15-09-01

239

-

1054

을미년 6월 초하루(7~8월)[선문염송] 강설

dharmak

15-08-04

221

-

1053

을미년 5월 초하루(6~7월) 선문염송 강설

dharmak

15-07-03

202

-

1052

을미년 4월 초하루(5~6월)선문염송 강설

dharmak

15-06-10

210

-

1051

을미년3월 초하루(4~5월)

dharmak

15-05-10

213

-

1050

수선사, 우리들의 유토피아

dharmak

15-05-10

226

-

1049

을미년 2월초하루(3~4월)

dharmak

15-04-12

220

-

1048

"수선사 연구" 발간 서문

dharmak

15-03-23

236

-

[1] [2] [3] [4] [5] [6] [7] [8] [9] [10]